2011. 7. 16. 01:56
레인부츠를 신을 수 없다.
남자라는 흔한 이유와 종아리에 걸려 터져 버릴 것 같은 유니크한 이유로 난 레인부츠를 신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요즘 같은 장마철.
웬만한 신발은 다 젖었고 그나마 버텨주던 튼튼한 녀석마저 젖어버리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최후의 한 수를 선택한다.
동생이 즐겨입는 롤업 9부면바지를 꺼내입고 올 여름을 겨냥해 준비해 놓은 슬리퍼를 신었다. 가방은 색이 선명한 숄더백으로 바꿔 기분을 더했다.
양말따위는 던져 버리고 출근길을 나섰다.
무언가 해방된 느낌이 강하게 나를 덮쳐온다. 바닥에 고인 물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며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내딛는다.
누구도 그렇게 쳐다보진 않았겠지만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느끼며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
산뜻하기까지 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순간.
놀러가냐?!라는 말과 함께 엄지를 올려 세워주시는 반가운 우리님들.
완벽했다. 불안함은 그저 기우였다.

납품준비를 하란다. 내가 가야하는데....
이상하다. 왜 오늘이지?!내일아닌가?!!불안감은 현실이었다.
현실을 넘어서고 싶다. 하지만 이놈은 왜이리 막막하며 높기만 한지.,
양말이야 편의점에서 살 수도 있다지만 신발은 어떡하는가. 사무실에 놓여있는 것이라고는 삼디다스 쓰레빠 한 켤레.
결국 추켜 올려졌던 엄지는 바닥을 향했고 사죄의 뜻으로 아이스크림을 샀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께서는 그러고 나갔나며 핀잔을, 동생은 형이 바지 입고 나갔었냐고 한참 찾았다며 한숨을...
사죄의 뜻으로 피자를 샀다.

매사에 더욱 철저한 준비를....유비무환
레인부츠 따위 그냥 신어줄 수 있는 용기를....패션피플

장마가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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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J파리